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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664
한자 河顯道
영어공식명칭 Ha Hyeondo
이칭/별칭 휘서(輝瑞),모정(茅亭)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동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추모 시기/일시 1814년 - 하현도 대덕사 배향
추모 시기/일시 1917년 - 하현도 백산사 배향
출생지 무주현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무주현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사당|배향지 대덕사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사당|배향지 죽계 서원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평장길 79[죽천리 1716-3]지도보기
사당|배향지 백산사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북리길 40[현내리 167]지도보기
성격 처사
성별
본관 진주

[정의]

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처사.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휘서(輝瑞), 호는 모정(茅亭).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의 10세손이다. 아버지 사양재(四養齋) 하위국(河衛國)이 임진왜란 때 무주 백운산(白雲山)으로 들어와 난을 피한 후 무풍면 현내리에 정착하였다.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 김일(金鎰)의 딸이다. 형제로 하징도(河徵道), 하정도(河呈道), 하형도(河亨道)가 있다. 하현도(河顯道)가 넷째 아들이다. 형제 네 명이 모두 학문에 출중하였다고 전한다.

[활동 사항]

하현도는 무주에 살면서 경사(經史)를 연구하고 도의를 닦았다. 오봉(五峰) 이호민(李好閔)에게 학문을 익혔고, 유성룡(柳成龍)에게도 묻고 배웠다. 선조인 목옹(木翁) 하백종(河自宗)과 경재(敬齋) 하연 두 분을 추모하여 운산(雲山)의 양지바른 곳에 소박한 정자를 지었다. 이 정자를 원근의 선비들과 함께 경사(經史)를 연구하며 강론(講論)도 하고 도의(道義)를 닦으면서 기거하며 생을 마칠 곳으로 삼고 ‘모정(茅亭)’이라 불렀는데, 후인들이 그 유지(遺址)를 모정평(茅亭坪)이라고 명명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도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봉양하였고, 상(喪)을 당하자 도를 넘게 슬퍼하여 몸이 지탱할 수 없도록 야위었다. 동계(桐溪) 정온(鄭蘊),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 등과 교유하였다. 정온이 말하기를 "일찍이 학문에 뜻을 세우고 세상을 등지고 사니 걱정할 것이 없구나." 하였다. 이유태와는 형, 동생 하며 사이좋게 지냈다.

[학문과 저술]

하정도, 하형도, 하현도 3형제의 행장(行狀)이 이유태가 쓴 『수용 실기(睡慵實記)』에 실려 있다.

[상훈과 추모]

1814년(순조 14) 후학들이 하현도 4형제와 윤선거(尹宣擧) 등 함께 활동했던 구현(九賢)의 모임을 기려 대덕산 아래에 대덕사(大德祠)를 세우고 배향하였다. 이후 대덕사가 철거되자 죽계 서원(竹溪書院)에 배향하였으나 죽계 서원 역시 고종(高宗) 때 철거된 후 1917년 백산사(栢山祠)에 배향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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