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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629
한자 光山金氏
영어공식명칭 Gwangsan Gimssi|Gwangsan Gim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대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광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입향지 사전리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사전리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
성씨 시조 김흥광(金興光)
입향 시조 김경조(金敬祖)

[정의]

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경조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연원]

광산김씨의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신무왕(神武王)의 셋째 아들로, 신라의 멸망을 예견하고 무진주(武珍州)에 은거하였는데,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가 광산 부원군(光山府院君)에 봉하였다고 한다. 이에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광산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고려 초기부터 명문가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한 광산김씨는 김위(金位)와 김주영(金珠永) 형제 대(代)에서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져 김광세(金光世)와 김광존(金光存)의 양대 산맥으로 분파되었다.

[입향 경위]

광산김씨로 무주에 처음 정착한 인물은 충목공(忠穆公) 김여석(金礪石)의 현손(玄孫)인 김경조(金敬祖)이다. 김경조는 학문이 박식하고 덕행이 훌륭하였는데, 익위사 세마(翊衛司洗馬)에 올랐다. 그런데 임진왜란을 당해 임금과 동행하지 못하고, 남쪽으로 내려와 무주의 안성 지역 산중을 거쳐 덕유산 백운암(白雲庵)에 머물렀다. 임진왜란이 종결된 후 이안면(二安面)[현 안성면] 사전리에 터를 잡고 정착하였으며, 그 후손들이 대대로 살았다.

후손으로 효행이 뛰어난 김상이(金尙蓬), 을미사변 이후 같은 고을 사람인 박중호(朴重浩)·하태홍(河泰洪)과 함께 궁궐로 올라가 일본을 물리쳐야 한다는 소(疎)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마침내 오도산(吾道山)의 농막에 숨어서 신진(新進)들을 가르치며 지낸 김직현(金直鉉), 어려서부터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긴 김필수(金珌洙), 빈민을 구제하는 등 덕행이 뛰어났던 김영귀(金永龜),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푼 김영훈(金永勛) 등이 있다.

[현황]

2015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광산김씨는 무주군 전역에서 504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관련 유적]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 사전 마을 입구에 1813년(순조 13) 건립된 김여석 신도비(金礪石神道碑)가 있고, 그 앞에는 집안의 고부 효열 사적비(姑婦孝烈事蹟碑)가 있다. 또한 무주군 안성면 중산리에 김영귀 송덕비(金永龜頌德碑)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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