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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538
한자 長白里遺物散布地
영어공식명칭 Archeological Site in Jangbaek-ri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물산포지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장백리 산61|장백리 산73-1|장백리 200|장백리 127-3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엄기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 - 장백리 유물산포지 전북 문화재 연구원에서 지표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7년 - 장백리 유물산포지 원광 대학교 마한·백제 문화 연구소에서 지표 조사 실시
소재지 장백리 유물산포지1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장백리 산61 지도보기
소재지 장백리 유물산포지2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장백리 산73-1 지도보기
소재지 장백리 유물산포지3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장백리 200 지도보기
소재지 장백리 유물산포지4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장백리 127-3 지도보기
성격 유물산포지
면적 42,423㎡[장백리 유물산포지1]|63,298㎡[장백리 유물 산포지2]|107,628㎡[장백리 유물산포지3]|30,644㎡[장백리 유물산포지4]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장백리에 있는 삼국~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위치]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서 단천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 보면 오산 삼거리가 나오는데, 오산 삼거리에서 성주군·설천면 방향의 무설로를 따라 약 4.3㎞ 정도 가면 우측 야산의 큰 패골, 작은 패골로 들어가는 도로가 보인다. 이 도로를 따라 약 400m 정도 가면 도로 우측 야산에 장백리 유물산포지(長白里遺物散布地)1이 위치하고, 도로 좌측으로는 장백리 유물산포지2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이곳에서 다시 성주군·무주군 설천면 방향의 무설로를 따라 약 800m 정도 가면 도로 좌측의 완만한 능선상에 장백리 유물산포지3이 위치하고 있다. 장백리 유물산포지3에서 약 500m 정도 가면 도로 우측의 능선상에 장백리 유물산포지4가 자리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2004년 전북 문화재 연구원의 『무주~설천 간 1 도로 확·포장 공사 문화재 지표 조사 보고서』와 2007년 원광 대학교 마한·백제 문화 연구소의 『문화 유적 분포 지도-무주군』 발간을 위한 지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유물산포지이다. 장백리 유물산포지1과 장백리 유물산포지2, 장백리 유물산포지3, 장백리 유물산포지4로 분류되었다. 유적의 시대나 성격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유구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형태]

장백리 유물산포지1과 장백리 유물산포지2는 야산에서 남대천(南大川)을 향하여 북동쪽으로 완만하게 뻗어 내린 능선에 자리한다. 장백리 유물산포지1은 부정 방형의 분포 형태로, 분포 범위는 동-서 방향 205m, 남-북 방향 237m 내외이다. 면적은 4만 2423㎡이다. 장백리 유물산포지2는 부정 장방형의 분포 형태로, 분포 범위는 동-서 방향 204m, 남-북 방향 379m 내외이다. 면적은 6만 3298㎡이다. 장백리 유물 산포지3은 야산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지형인 막석골과 구베들에 자리한다. 장방형의 분포 형태로, 분포 범위는 동-서 방향 470m, 남-북 방향 276m 내외이다. 면적은 10만 7628㎡이다. 장백리 유물산포지4는 야산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능선상의 고래실골에 위치한다. 부정 원형의 분포 형태로, 분포 범위는 동-서 방향 207m, 남-북 방향 182m 내외이다. 면적은 3만 644㎡이다.

[출토 유물]

장백리 유물산포지1에서는 고려 도기편과 백자편이 상당량 수습되었으며, 장백리 유물산포지2에서는 회청색 경질 토기편과 고려 토기편이 상당량 수습되었다. 장백리 유물산포지3에서는 회청색 경질 토기편과 회백색 연질 토기편, 고려 도기편 등이 수습되었으며, 장백리 유물산포지4에서는 회청색 경질 토기편이 수습되었다.

[현황]

장백리 유물산포지 대부분은 현재 민묘가 조성되어 있거나 밭과 논으로 개간되어 있다. 발굴 조사 등이 이루어지지 않아 유적의 정확한 성격과 연대를 알 수 없지만,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토기편과 자기편 등이 수습되고 있어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유적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장백리 유물산포지2에서는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돌로 만든 고름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묻혀서 전혀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수습된 유물과 입지상으로 볼 때 분묘 유적이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장백리 유물산포지는 2004년에 확인된 이후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밀 발굴 조사가 시행된다면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비교적 긴 기간 동안 이루어진 무주군 무주읍 장백리 지역의 역사와 사회상은 물론 고분 문화를 밝히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고*** 출토 유물을 보면 적어도 유물산포지의 시대를 초기국가시대(1~2세기)까지 올려야 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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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기하신 의견에 관한 자료를 보내주시면 검토후 반영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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