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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산성 장도바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1210
한자 赤裳山城將刀-
이칭/별칭 「적상산성과 장도바위」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집필자 김선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2년 - 「적상산성 장도바위」, 『내 고장 전설집』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4년 - 「적상산성과 장도바위」, 『무주 군지』 중권에 수록
관련 지명 적상산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지도보기
관련 지명 장도바위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지도보기
관련 지명 적상산성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지도보기
관련 지명 안국사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인물 전설|암석 유래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최영 장군|공양왕|목호|병사
모티프 유형 장도바위의 유래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에서 장도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적상산성 장도바위」는 고려의 최영(崔瑩)[1316~1388] 장군이 제주 목호(牧胡)들의 반란을 진압한 후 개경으로 돌아가다가 무주군의 적상산에 머물게 되었는데 길을 가로막는 바위를 칼로 쪼개 길을 내었다는 인물 전설이자, 최영 장군이 장도로 쪼갠 바위라 하여 ‘장도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암석 유래 전설이다. 또한 최영 장군이 적상산의 지세가 천혜의 요새임을 알아보고 적상산적상산성을 축조하고 안국사를 창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덕유산 국립 공원적상산은 한국 100경에 드는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산이다.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면 여인의 붉은 치마폭을 연상시킨다하여 ‘적상(赤裳)’이라는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최영 장군이 축조하도록 건의했다는 무주 적상산성은 1965년 7월 10일 사적 제146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국사무주 적상산성 안에 있다.

[채록/수집 상황]

「적상산성 장도바위」는 1992년 김경석이 편찬하고 무주군에서 간행한 『내 고장 전설집』의 99~100쪽에 실려 있으며, 2004년 무주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간행한 『무주 군지』 중권에 「적상산성과 장도 바위」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채록 장소와 채록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내용]

고려 말 남쪽 해안 지방에는 왜구들이 노략질을 일삼고, 명나라에서는 사신을 보내 제주도의 말 이천 필을 보낼 것을 재촉하는 등 나라가 어수선했다. 당시 제주에는 원(元)나라에서 목마장을 개설하고 몽골인 목자인 목호를 보내 관리하게 했는데, 제주도가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목호들이 반란을 일으켜 제주도민을 억압하는 등 횡포가 심했다. 이에 공양왕이 삼도 통제사 최영 장군을 제주도로 보내 목호들의 반란을 평정하게 했다. 최영 장군은 군대를 이끌고 제주에 내려가 목호들의 반란을 제압하고 개경으로 개선길에 올랐다. 개경으로 향하던 최영의 군대가 주계(朱溪)[무주의 옛 이름]에 이르게 되었다.

적상천에서 병사들을 휴식시키던 최영 장군은 산의 아름다움에 빠져 문득 산 정상에 올라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최영 장군은 부장 몇 사람만을 대동하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지점에 높은 바위가 가로막혀 있어 정상까지 오를 수가 없었다. 화가 난 최영 장군이 허리에 차고 있던 장도로 바위를 힘껏 내려치자 바위가 양쪽으로 쪼개졌고 그 사이로 길이 났다. 최영 장군이 적상산 정상에서 산세를 살펴보니 하늘이 내린 요새였다. 최영 장군은 공양왕에게 적상산에 성을 쌓아서 승병을 양성할 것을 건의했다. 그래서 지금의 적상산성이 축조되었고, 안국사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또한 최영 장군의 길을 막았던 바위는 최영 장군이 장도로 쪼갠 바위라 하여 ‘장도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적상산성 장도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장도바위의 유래’이다. 개경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도까지 병사를 이끌고 가 목호들의 난을 평정하고 개선길에 오른 최영 장군의 용맹함이 앞길을 가로막는 높은 바위를 단칼에 쪼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장면을 통해 드러난다. 또한 「적상산성 장도바위」에는 최영 장군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 도착한 적상산 정상의 지세가 나라를 지키는 데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을 간파하고 무주 적상산성안국사를 만들도록 한 애국심, 충성심 등이 잘 드러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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