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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702
한자 李晩景
영어공식명칭 I Mangyeong
이칭/별칭 군진(君珍),두촌(斗村)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91년연표보기 - 이만경 출생
몰년 시기/일시 1776년연표보기 - 이만경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88년 - 이만경 자헌대부 예조 판서 겸 중추부지사에 증직
출생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 지도보기
성격 효자|충신
성별
본관 흥양(興陽)

[정의]

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이자 충신.

[가계]

본관은 흥양(興陽). 자는 군진(君珍), 호(號)는 두촌(斗村). 형은 이만번(李晩蕃)이다.

[활동 사항]

이만경(李晩景)[1691~1776]은 1691년(숙종 17)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서 태어났다. 이만경은 성품이 올바르고 학문도 뛰어나 수많은 제자들이 그를 따랐다. 뿐만 아니라 청렴하여 사사로운 물욕이 없었다. 그래서 집안은 늘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하였다. 이런 모습을 보고 안타깝게 여긴 제자들이 이만경 몰래 집에 쌀을 갖다 놓자, 이만경이 제자들을 크게 나무랐다. 그러면서 "세상에는 나보다도 어려운 사람들이 훨씬 많거늘, 이 무슨 어리석은 짓인가. 자네들이 꼭 베풀고 싶으면 오래도록 병석에 누워 계신 그리고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재 너머 박 초시(朴初試) 댁에 이 쌀을 가져가 드리게."라고 할 정도였다. 그만큼 이만경은 본인보다도 남을 더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이만경이 한밤중에 자기 집에 소를 훔치러 온 도둑에게 소를 준 일이나 혹은 흉년에 걸인을 구제(救濟)하고 집안 노복을 해방시켜 준 일은 유명하다.

이만경은 또 효성이 지극한 효자였다. 그의 효심에 대해서는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어느 해, 아주 추운 겨울이었다. 어머니가 잉어를 먹고 싶다고 하였는데, 그 겨울에 잉어를 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이만경이 개울에 나가 얼음을 두드리며 통곡하자, 잉어 한 마리가 얼음을 뚫고 튀어 나왔다. 이에 사람들은 이만경의 효심이 하늘을 감동시켰다고 하면서 잉어가 나온 장소에 '빙어약소(氷魚躍所)'라는 글씨를 새겼는데,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 나제통문(羅濟通門) 휴게소 옆의 바위에 지금도 그 글씨가 남아 있다. 이만경을 효행에 대해서는 또 이런 일화도 있다. 어느 해, 겨울에 또 어머니가 잉어를 먹고 싶어 하였다. 이에 이만경이 잉어를 구하려 다녔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만 깜박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만경이 앉았던 자리의 얼음이 녹더니 그 사이로 잉어가 뛰어올랐다는 것이다.

꿩과 관련된 이만경의 효행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어느 날, 부모로부터 꿩을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만경이 꿩을 구하러 집 밖으로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꿩이 땅으로 떨어져 죽었다. 이 모습을 보고 감동한 사람들이 꿩이 내려 온 자리에 '설치자투소(雪雉自投所)'라는 글씨를 새긴 비를 세웠다고 한다. 나라를 위하는 이만경의 충정도 대단하였다. 1728년(영조 4) 이른 바 무신난(戊申亂)이 일어났을 때 전라도에 있던 반란군들이 한양으로 진군하려고 하였다. 이때 이만경이 형 이만번과 함께 관군과 합세하여 반란군을 저지하였고, 그래서 난이 평정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만경은 1776년(영조 52)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이만경의 효행과 충정은 후세 사람들로부터 많은 칭송을 받았다. 그리하여 고종은 1888년(고종 25), 즉 이만경이 사망한 지 110여 년이 지났을 때 그의 충효를 기리는 정려(旌閭)를 내리고, 이만경에게 자헌대부 예조 판서 겸 지중추부사(資憲大夫禮曹判書兼知中樞府事)의 직을 내려 주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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