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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411
한자 赤裳山城護國寺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비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산18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대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45년연표보기 - 적상산성호국사비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79년 12월 27일연표보기 - 적상산성호국사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
현 소재지 적상산성호국사비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산184 지도보기
성격
관련 인물 이식(李植)
재질 대리석
크기(높이, 너비, 두께) 1.78m[높이]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호국사의 창건 내력을 기록한 비.

[개설]

적상산성호국사비(赤裳山城護國寺碑)적상산성 안에 설치되었던 적상산 사고(赤裳山史庫)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선원록(璿源錄)』을 지키던 수호 사찰(守護寺刹) 호국사(護國寺)의 창건 역사를 기록하여 세운 비이다. 비에는 1643년(인조 21) 이식(李植)이 왕명으로 사고를 순찰하고, 병자호란 이후 문란해진 사고 관리와 산성 방어를 철저히 하기 위하여 왕에게 진상(秦上)하여 창건하게 된 경위가 기록되어 있다.

[건립 경위]

적상산 사고적상산성의 보존 관리가 부실함을 확인한 이조 판서 겸 대제학 이식의 건의로 1645년(인조 23) 호국사를 건립하고, 그 내력을 기록하여 세웠다.

[위치]

적상산 정상부에 있는 안국사(安國寺) 경내 남쪽 축대 아래에 있다.

[형태]

대리석으로 만든 이면비(二面碑)로 전체 높이는 1.78m이다. 직사각형 모양 비석의 받침돌 사면에 안상(眼像)을 배치하고, 좌우에 구름 모양의 무늬를 조각하였으며, 중앙에는 4개의 여의두문(如意頭紋)을 조각하여 돌출시켰고, 상두면은 복련(伏蓮)을 새겨 장식하였다. 농대는 높이 27㎝, 정면 폭 82㎝, 측면 폭 47㎝이다. 농대 위의 비신(碑身)은 높이 1m, 폭 59㎝, 두께 17㎝이다. 이수(螭首)는 4면에 용트림을 조형한 반룡(蟠龍)을 조각해 놓았고 높이 51㎝, 폭 82㎝, 두께 37㎝이다.

[금석문]

농대 위의 비신 상단에 '적상산성호국사비'라고 한자로 두전(頭篆)이 각자되어 있고, 아래로 본문을 새겼다. 뒷면에는 ‘순치 2년 10월 일건(順治二年 十月 日建)'이라고 새겼다.

[현황]

현재는 마모가 심해 글씨를 거의 알아볼 수 없지만, 1898년(고종 35) 간행된 『적성지(赤城誌)』「적상산성」에 비문의 전문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적상산 사고의 설치 경위와 과정, 사고 방비의 허술함, 호국사 창건 경위 등을 담고 있다. 특히 전라 감사가 자신의 봉급에서 호국사 창건 비용을 부담하고 승장(僧將)이 사역(使役)을 담당하였으며, 무주 현감(茂朱縣監)이 물자의 조달과 감독을 맡았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비문을 통해서 호국사는 본래 적상산성 안에 있는 사고를 수호하기 위해서 동원된 승병들의 숙소로 건립되었고,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사고가 폐지(廢止)될 때까지 『조선왕조실록』을 보존한 역사 지킴이의 도량(道場)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호국사는 1949년 여순 사건 당시 경찰의 소개 작전(疏開作戰)에 의해 병화(兵火)로 소실되었다. 1979년 12월 27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현존한 향토 사료 중 적상산성과 관계되는 기록을 비교적 상세히 담고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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